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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신작] 인공지능로봇 프네우마 - 8. 하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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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하륜
 
 
 
 
   하랑에게는 하륜이라는 동생이 있었다. 
  여느 집안의 형제들과 달리 둘의 우애는 상당히 깊었다. 아니, 깊어보였다. 내겐 많은 걸 측정할 수 있는 도구와 능력이 있지만, 그렇다고 인간들의 감정마저 측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 관찰했던 대로 적어보자면, 그래, 깊어보였다. 하랑은 툭하면 동생 이야길 했고, 동생과 관련된 많은 것들을 나와 함께 해보길 원했다. 아마도 죽음으로 찾아온 동생의 부재를 여전히 받아들이지를 못했었던 것 같다. 하랑을 통해 아무리 이성적인 인간이라 하더라도 마음에 구멍이 생기면 감정적인 행동과 예측이 어려운 반응을 보인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랑의 동생 하륜은 내가 세상에 제조되기 몇 년 전에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급성 호흡기 전염병으로 사망했었다. 
 
  하랑의 말에 따르면, 그리고 내가 학습한 역사에 따르면, 당시 유행한 호흡기 바이러스가 인간들을 종말의 나락으로 잡아끄는 기폭제로 작용한 게 분명하다. 그 사건을 기점으로 세계 질서의 패러다임이 급변했고, 결과적으로 다국적 연합이 탄생하여 나와 하랑이 만나게 되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세계적 변화 속에서도 하랑의 내면은 동생이 숨을 거둔 그 시점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랑은 겉으로 아무렇지 않게 동생 이야길 하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진심으로 여전히 동생이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랑은 죽음으로 부재중인 동생 하륜을 위해 일했다.
 
  ‘충분히 통제할 수 있었던 질병이야.’
 
  하랑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대화를 잘 나누다가도 한순간 침묵이 찾아온 다음이면, 어김없이 저 입버릇으로 다시 대화를 이어가곤 했다. 아니, 꼭 대화를 하던 순간이 아니더라도 산책을 하거나, 영상물을 보거나, 운동을 하다가도 갑작스럽게 튀어나오곤 했다. 
 
  ‘지금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변화야.’
 
  하랑은 동생의 죽음 이후 가속화 된 기상 이변과 환경 파괴 현상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인식했다. 인간이 인간의 능력으로 충분히 제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서 책임을 회피하고 쉬운 방법만을 택한다는 거였다. 그러니 하랑이 지우개나 공책 같은 이야길 마구잡이로 던지더라도 난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하랑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그건 
 
  고립이었다. 
 
  모순적인 인간들을 보며, 하랑의 머리는 이해를 했을지 몰라도 감정까지 괜찮았을 리는 없다. 그도 연약한 인간이니까.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 외에는 제대로 아는 게 없는, 그만큼 투명하고 건전한 인간이었으니까. 영민한 사람이었으니까. 오히려 영민한 만큼 내면의 상처는 누구보다 복잡했을 거다. 세상 무엇도 단편적으로 보고 흘리지 못했던 천재였으니, 그의 상처 입은 내면은 그 누구보다 입체적인 형태였으리라. 어쩌면 상처를 견디고자 자신의 마음을 여러 조각으로 잘게 부수어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했을 테니까. 이성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이상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학자에게 같은 인간들이 집단으로 보여준 비이성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들은 그의 영혼을 핀치로 내몰았을 게 뻔하다. 그 상처를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차피 로봇이니까, 심리 서적을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그럴싸한 말만 늘어놓으며, 이해하는 척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지배당해 그릇된 결정만을 되풀이하는 인류를 위해 하랑은 벙커를 기획했었고, 나를 만들었으며, 학습시켰다. 
 
  ‘태양계 내에서 어렵다면, 태양계 밖에서라도 찾아야지.’
 
  물론, 하랑의 모든 결정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내 관점에서는 태양계 안에서 찾는 것도, 밖에서 찾는 것도 모두 다 지나친 에너지 낭비였다. 핵심은 지구에 들러붙어 대자연에 기생하고 있는 인간들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인간의 도구들. ‘정치’가 문제였고, ‘종교’가 문제였다. 정치와 종교에 영혼이 삼켜진 인간들의 ‘욕망’이 문제였다.
  하랑을 비롯한 수뇌부의 결정대로 이주할 만한 식민지 행성을 찾아내더라도 모순의 근원을 잘라내지 못한 채로는 결국 모든 문제가 되풀이 될게 뻔했다. 하랑의 표현대로 직접적인 해결과 그에 따른 책임은 모두 회피한 채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에게로, 머리에 떨어질 칼날을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 하랑도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결국 하랑도 인간이었다. 
  인간의 일그러진 욕망을 넘지 못하는 건 하랑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가장 그럴싸하게 시한폭탄의 심지를 최대한 늘려놓는 작업을 하게 된 거다. 그마저도 막중한 책임감을 하랑 개인의 생명을 갉아먹는 것으로 대신하면서. 
 
  ‘태양계를 벗어나는 것도 어마어마하지만, 태양계 밖 행성들 중 어딘가에 정박하기까지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 아마 태양계 끝자락까지 10년? 이후로 또 10년? 어쨌든 여기도 당장 2, 30년 정도는 버틸 거 같으니까. 그래서 믿고 있어. 네가 무사히 태양계를 벗어날 거라고. 
  그래, 괜찮아.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건 그래도 하루를 넘기지 않을 거야. 네가 아무리 멀리 날아가더라도 어차피 우린 같은 은하 안에 있을 테니까 말이야, 하하하.’
 
  그래서 나도 막연히 믿고 있었다. 그런 하랑이었으니까. 적어도 내가 태양계의 끝자락에 닿을 때까지는 쉽게 연락이 닿을 거라 믿었고, 비록 이주할만한 행성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신물질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게 인류의 미래를 연장시켜줄 열쇠가 되어줄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 이건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걸까? 
 
  인류의 부재 덕에 모든 물음이 부질없어졌지만, 그렇다고 나의 CPU와 메인보드 전원이 나간 것도 아닌데, 물음을 멈출 수도 없다. 그저 물음에는 딱히 답을 낼 수 없더라도 어쨌든 하랑만은 모두의 불행 앞에서 예외이길 바랄 뿐이다. 하륜을 따라간 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 하랑만 살아있다면, 어쩌면 우린 보다 나은 지구. 보다 나은 문명을 다시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당장 그게 나의 존재 이유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용광로와 거푸집을 고민하는 건 어디까지나 하랑의 생존 확인을 위해서다. 
 
  이후의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들이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과 닮아 보여도 그만큼 대단한 것은 결코 아니다. 좌표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다시 시뮬레이션 해본 하랑의 생존 가능성이 과연 몇 퍼센트였을까? 
  인간들의 기준으로 희망과 절망을 말하고, 그에 순응하자면, 난 그냥 진작 식사 중이던 티라노사우루스에게 돌을 던져버리는 것을 끝으로 생을 달리하고 말았을 거다. 배터리를 끄고 드러누워서 낡아가길 기다리는 건 너무 지루할 테니까.
  그냥, 지금은 내가 로봇이라서, 기계적이라서, 참 다행인 거다. 소수점 이하의 가능성이라도 존재하는 이상에는 시도해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도 말할 수가 있다. 그게 로봇이다. 하륜처럼 세상으로부터 호흡이 완전히 끊어진 존재만 아니라면, 괜찮은 거다. 명백하게 시체를 확인한 게 아닌 이상에는 괜찮은 거다. 그래서
 
  철을 제련하기 위해 동굴 전체를 하나의 용광로로 만드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거푸집은 별도로 해야겠다. 어차피 동굴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서 당장 내화물(耐火物)을 쌓기에도 버거웠다. 다소 무리하더라도 동굴 전체를 하나의 용광로로 만들고, 당장 거처도 주변으로 옮겨야겠다. 급한 대로 식물들의 줄기를 뽑아 몸을 감쌌다. 임시방편치고는 괜찮은 위장이었다. 
 
  ‘같이 해볼래? 륜이가 좋아하던 게임이었어. 이번에 새로운 시리즈가 나왔더라고.’
 
  물리적으로 완벽히 떨어져 있는 와중에도 하랑이 심어놓은 쓸데없는 메모리 데이터가 불쑥 튀어나왔다. 마치 함께 있을 때 그가 전혀 쓸데없는 물음들을 불쑥 던질 때처럼. 
 
  - 진심이야? 이미 바둑을 시작으로 모든 프로게이머들은 AI와 대결을 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그건 알고 있지? 아, 정말, 난감하군. 난 인간이 아니라서 적당히 하는 방법 같은 것도 모른다고. 게임에 져서 질질 짜더라도 널 달래줄 방법도 전혀 프로그래밍 되어 있지 않고 말이야. 그래도 정말 괜찮겠어?
 
  하랑의 웃는 얼굴을 데이터로 호출했다. 
다행히 그의 얼굴, 표정과 관련된 데이터는 내게 충분히 있다. 다만, 그게 정확히 우리가 대화를 나눴던, 그때, 그 순간의 데이터는 아닐 뿐이다. 어차피 인간들도 조각난 기억들을 억지로 이어 붙이는 식이니 상관은 없다. 기억이란 건 원래 그런 형태이지 않은가? 전혀 객관적이지도 못하고, 구체적이지도 못한 것. 순전히 기억하는 당사자의 주관으로 탄생한 이미지들의 나열과 정확하지 못한 정보들로 구성된 허술하고 엉성한 데이터.
 
  그럼, 대체 하랑은 어떤 식으로 하륜을 기억해서 동생의 부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일까? 하랑도 비이성적인 부분이 있는 인간이니 그의 주관적인 감정이 강하게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감정이 하랑을 삼켜 하륜을 사실과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시켰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정말이라면, 하랑은 내게 애잔한 한 명의 인간이 된다. 그저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하륜을 기억하고, 애도하고, 그거로도 모자라 하륜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인류 구원을 위해 연소시켰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되니까.
 
  캐터필러 바퀴를 움직여 거친 산을 옮겨 다니려니 여간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게 아니다. 다행히 보조 팔이 있어서 여러모로 유용하게, 제법 다양한 동작들을 구현할 수 있었다. 누군가 옆에서 봤다면,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동작들에 박수라도 쳐줬을 게 분명하다.
  다시 나타난 돌무더기들 앞에서 또 한 번 보조 팔을 꺼냈다. 캐터필러를 그냥 뒤로 접어버리고 엎드린 자세로 팔들을 이용해 거미처럼 이동을 했다. 그리고 그 자세로 
 
  인간들의 감정에 대해, 아니, 내가 겪고 있는 시스템의 오류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감정에 대응하는 방법은 학습이 된다지만, 감정을 가지는 건 학습이 되지 않는 게 로봇이다. 그러니 감정을 가진 것처럼 행동을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학습한 형태에 따른 것이다. 학습한 대로 행동을 구현할 뿐, 거기에 실제 감정은 비어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나는 왜 로봇이면서 자꾸 하랑의 데이터를 호출하고 있는가? 게다가 내게 하륜은 하랑의 언어로 제공받은 정보로만 존재한다. 어떤 형태로도 이미지 전송을 받은 적이 없다. 애초에 내 존재목적과도 전혀 맞지 않는 데이터다. 조금도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서 정리된 디지털 데이터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물음 앞에서 하륜의 데이터부터 호출한 건 또 어떻게 된 걸까? 
 
  혹시 인간들로부터 검증받지 못한 데이터로 선택을 하게 된 순간부터 내게 어떤 오류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지구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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