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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신작] 인공지능로봇 프네우마 - 6. Llano Estac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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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Llano Estacado
 
 
 
 
  1541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칼뱅의 종교개혁이 한창일 때, 스페인의 탐험가 후안 챠베리아 갈리도는 기쁜 마음으로 미 대륙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식민지 정복을 위해 파견된 군부대로부터 떨어져 나와 드디어 홀로 여행다운 여행을 하게 되었다는 짜릿한 흥분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들뜬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눈앞에서 믿지 못할 일이 벌어져 전혀 수습할 길을 찾지 못해서였다. 그건 별안간 날아든 인디언의 화살이나 모래 바람을 폭풍처럼 달고 나타나는 긴 뿔 소떼의 습격 같은 극적인 사건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어이없고,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곳이군. 정말, 방황하다가 딱 죽기 좋은 곳이야.’
 
  말뚝이나 표지판을 따로 세워두지 않으면,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 곳. 그렇다, 어이없을 정도로 탁 트인 평원 앞에서 후안은 그대로 넋을 놓아버렸던 거다. 그건 바다를 건너오면서 느꼈던 바다의 막막함과 똑같은 것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의 바닥은 말라서 갈라져 있었고, 그 위로 다년생 풀들이 군데군데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만이 후안과 풀들을 어루만져줄 뿐.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없었다. 주변을 다 둘러보아도 똑같은 풍경만이 펼쳐져 있었다. 후안은 미쳐버릴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 미친 듯이 말을 몰았다. 그리고 
  정말 미쳐버렸다. 
  미쳐 버린 다음은 뻔하다. 태양의 열기를 고스란히 받아서 뿜어내던 메마른 대지 위에서 길을 잃은 그와 그의 망아지가 탈수로 쓰러져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메마른 바람만이 그들을 쓰다듬었을 뿐. 누구도 감히 그들의 시체를 찾으러 나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후안의 시체는 독수리들에게 모든 살점을 내주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그곳에서 누군가의 이정표 노릇을 해주었다. 그리고
 
  몇 세기나 지난 지금. 그 아무것도 없는 평원, 이제는 후안의 뼈다귀조차 남아있지 않을 라노 에스타카도를 향해 내가 다가설 차례가 되었다. 
  하랑이 지하로 숨어들었다면, 필시 그곳일 테다. 
 
  ‘지리적으로 그곳이 가장 안성맞춤이야. 일단 텍사스 북서부 사막화 지역이라서 그리 주의 깊게 살펴볼만한 곳이 아니지. 그렇지만, 우린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장기적인 투자를 해왔어.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사라졌던 다년생 풀들을 다시 사들여서 덮어버렸지. 그리고 그 위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원을 그리며 물을 뿌려주는 관개 시설을 만들었어. 겉으로는 정말 잘 운영되고 있는 개척 농경지가 형성된 거야. 거기서 나온 농작물이 실제 유통되고 있기도 하고 말이야. 그러니 누가 쉽게 의심할 일은 없을 거란 말이지.’
 
  - 이런 걸 내게 막 알려줘도 괜찮은 거야? 엄연히 군사기밀이잖아? 내가 각 잡고 해킹이라도 시도하면 어쩌려고 그래?
 
  ‘괜찮아, 어차피 정확한 좌표는 나도 모르는 걸. 접속코드도 당연히 모르고 말이야. 어쨌든 에스타카도, 혹은 그 주변에 벙커시설을 마련해 두자는 게 나와 알론조의 의견이었어. 텍사스의 경제발전 속도와 그 교통편이라면, 물자 확보도 어렵지 않으니까. 그래서 딱 좋았던 거야.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작업하기에 그만한 곳이 없었어.
  그러니까 그냥, 메모리에 단단히 저장해두라고 일러주는 거야. 네가 우주에서 길을 잃게 되면, 아마도 인류의 마지막 세대가 그 벙커 안에서 말라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뭐, 그렇다고 부담을 크게 가질 필요는 없어. 나도 최선은 다할 거니까. 까짓 네 동생을 하나 더 만들어서 녀석도 우주로 날려버리지 뭐. 안되면, 동생의 동생들도 만들고 말이야.’
 
  - 그럼, 부탁인데 말이야. 내 동생들에게는 이런 불필요한 데이터 삽입은 말아줬으면 해. 로봇에게 부담 같은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그냥 명령대로 이행해서 이동하고, 데이터를 지구로 날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거 아니냐고. 아니, 그전에 진짜 날 우주탐사로봇이라고 인식은 하고 있는 거야?
 
  똑똑한 하랑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었다면, 수뇌부들은 다른 곳이 아닌 라노 에스타카도에 벙커를 마련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을 거다. 
 
  물론, 다른 많은 후보지들이 더 있긴 하지만, 게다가 각국의 수도권과 더 가까운 곳들도 많았지만, 어디가 되었든 정확한 좌표조차 모르지만, 아니, 정말 공사조차 제대로 진행을 한 것인지조차 모르지만,
 
  현재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접근했을 때, 지구의 표면이 아닌 이면을 확인해봐야 한다는 건 가장 그럴싸한 가설이다. 그러니 과학자의 로봇답게. 난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직접 라노 에스타카도로 향해야 한다.
 
  쿵쿵쿵쿵쿵.
 
  요란스럽게 울리는 진동은 미약한 단서라도 찾아내어 시도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흥분감의 표현 같은 게 전혀 아니다. 급작스럽게 위험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소리였다. 동굴 밖에 어마어마한 무게의 조류가 나타났다. 
녀석이 단순히 걷기만 했는데도 인위적인 지진이 발생했고, 그 충격으로 난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정밀하게 측정한 값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족히 강도 6.5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과거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었을 때 발생한 지진의 강도가 6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매우 근접한 수치라고 추정이 된다. 그렇다는 건 당장 한가하게 동굴에 몸을 웅크리고 있어서 될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황급히 허리춤의 개폐 장치를 열어 보조 팔을 꺼냈다. 미확인 행성에 착지했으면, 자원 수집과 텐트 설치를 위해서 사용되었을 다목적 팔이었을 텐데, 지금은 우주보다 예측이 어려운 지구에서 생존을 위한 버팀돌이 되었다. 조심스럽게 보조 팔을 놀려 쓰러진 몸을 일으키고 바퀴를 굴려보았다. 난 인간들과 달리 두 발로 직립보행이 가능한 외형이 아니라서 지금처럼 넘어지게 되면 여러모로 거추장스럽다. 우주 지형의 변수와 효율성을 고려해 탱크처럼 롤러에 체인을 걸어둔 것이 지금 같은 예측불허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어버린다. 뒤집혀진 탱크가 쓸모없는 고철로 한 순간에 전락해버리듯이 나 역시도 인류 최후의 자산이라고 한다지만, 본체가 뒤집어진 채로는 고철과 다름이 없다. 이대로 지진이 이어진다면 작은 동굴 하나쯤 무너지는 건 어디까지나 시간문제일 테니 말이다. 빛 한줌 들지 않는 돌무덤 속에서 글을 쓰는 인공지능로봇 같은 건 지구의 미생물들에게도 끔찍한 존재일 것이다. 그들이 내 배터리가 소멸되어 기능이 정지할 때까지는 기다려줄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완전히 부식되려면, 또 몇 백 년, 몇 천 년이 필요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웅웅웅. 다행히 걱정과 달리 바퀴들을 감싼 캐터필러는 무사했다. 
 
  그아아아앙!
 
  순간 음향탐지기의 상태를 알리는 초록불빛이 깜빡였다. 난 정해진 매뉴얼대로 어깨의 개폐 장치를 열어 음향탐지기를 뒤집은 우산처럼 꺼내들고 음향 분석에 들어갔다. 동굴의 어둠보다도 깊고, 길게, 울리는 섬뜩한 저주파. 
 
  우우우움.
 
  마치 숙달된 연주자의 트럼본 소리처럼 낮은 음역대를 가득 채우다 못해 공간까지 압박하는 괴이함. 필시 상당한 덩치의 짐승이 내는 소리가 분명했다. 여차하면 짐승을 상대로 호신(護身)을 위해 레이저 절단기를 사용해야할지도 모른다. 펼쳐진 디스플레이창들을 닫고 레이저 절단면 값을 최대치로 설정하였다. 금방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레이저 절단기를 아꼈던 건 기관총처럼 연발로 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작업 때보다 훨씬 더 정밀한 조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굴처럼 막다른 곳에서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동굴 안은 배수의 진을 친 상태나 다름이 없다. 위험 요인은 정면으로 찾아올 수밖에 없고, 적의 덩치마저 크다면 단발로도 확실히 처리가 가능하다.
 
  쿵쿵쿵쿵쿵.
 
  다음 순간 울음소리가 잦아드는가 싶더니 이전보다 더 강력한 강도의 지진이 밀려왔다. 위압감에 몸을 떨며 겨우겨우 보조 팔로 버티었다. 때를 맞추어 음향 주파수 분석도 마무리되었다. 분석 결과대로라면, 음침한 소리의 주인은 7톤 이상의 무게를 지닌 조류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점점 더 가까워지는 지진도 설명이 가능해 진다. 7톤 이상이나 되는 짐승이 동굴 근처에서 전력으로 달리고 있다면, 실제 지진보다 훨씬 더 위협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세상이 천지개벽을 했다지만, 무게가 7톤이 넘는 날개 달린 조류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공룡들의 조상(祖上)과 새들의 조상(祖上)이 같고, 그 정체가 아르카이옵테릭스(Archaeopteryx). 즉, 시조새라는 걸 상기해봤을 때, 밖에서 날뛰고 있는 녀석은 아주 높은 확률로 공룡들의 대장인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나 유사한 수각류종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 내가 티라노사우루스를 향해 레이저 절단기를 휘두르게 되는 걸까?
 
  시뮬레이션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놈에게 확실한 한 방을 선사하긴 위해서는 출력을 최대치로 높여야만 하는데, 그렇게 되면 빛이 지정된 범위를 넘어서 분사되는 형태로 방출될 수밖에 없고, 그러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순식간에 동굴 입구가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성대가 없어서 명관으로 발성하는 조류. 아니, 조류의 후손. 때문에 소리가 낮고 묵직하고 깊을수록 개체의 각 기관이 크다는 소리고, 기관이 크다는 건 자연스레 몸체가 크다는 말이 된다. 지진의 강도가 아니라, 놈이 내는 소리만 봐서도 명확하다. 동굴 밖의 녀석은 분명 7톤 이상이다. 고민의 여지가 없다. 확실한 제압과 안전 확보를 위해서라면, 내가 동굴 입구로 먼저 나서야 했다. 
 
  동이 트기 시작한 탓에 햇살은 맑았고, 식물들은 잎사귀에 밤이슬을 얹은 채 여전히 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한 폭의 그림 속에서 이질적인 건 단 둘이었다.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와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를 향해 포효하는 비슷한 덩치의 기가노토사우루스(Giganotosaurus). 지진의 강도가 점차 강해졌던 건  두 녀석이 맞붙게 되어서 그런 게 분명했다. 
  둘의 싸움은 기가노토사우루스가 사냥한 먹잇감을 두고 티라노사우루스가 훼방을 놓은 게 발단이 된 것으로 보였다. 기가노토사우루스 발밑에 깔린 정체 모를 거대한 고깃덩어리가 단서였다. 티라노사우루스가 기가노토사우루스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폼으로 봤을 때, 사정권 안에 들어오면 바로 냅다 물어버릴 기세였다. 반면, 기가노토사우루스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둘의 외형적 생김새는 비슷했지만, 결정적으로 기가노토사우루스의 이빨이 훨씬 무디었던 탓에 정면충돌만큼은 피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대자연은 약육강식의 세계다. 
 
  그에에에에엥.
 
  기가노토사우루스가 무딘 이빨 대신 원심력을 이용해 뒷꼬리를 휘둘렀지만, 티라노사우루스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의 회전 방향을 따라 그대로 더 큰 궤적을 그리며 이동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공격 사정권을 벗어났다. 덕분에 중심을 잃은 건 오히려 기가노토사우루스였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때를 놓치지 않고 가볍게 몸을 날려 상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덩치만 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민첩한 행동이었다. 다음 순간 티라노사우루스가 갈팡질팡하는 기가노토사우루스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졌다. 기가노토사우루스가 내지르는 단발마의 비명이 산자락을 빼곡하게 뒤덮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날카로운 이빨 틈사이로 기가노토사우루스의 뜨거운 피가 솟구쳐 새어나왔다. 
기가노토사우루스의 목숨을 끊어버린 티라노사우루스는 작은 포효조차 내지르지 않았다. 세리머니조차 불필요하단 것일까? 기가노토사우루스는 녀석에게 아침운동 전의 몸풀기 상대조차 되지 못했나 보다. 티라노사우루스는 간단하게 기가노토사우루스의 목을 뜯어냈다. 매우 가볍게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뼈와 근육을 단숨에 뜯어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터무니없는 악력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는 권태로운 발걸음으로 등을 돌려 기가노토사우루스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던 고깃덩이를 들어올렸다. 그렇게 전리품을 모두 확인하고 나서야 천천히 얼굴을 파묻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첨단의 인공지능이라지만, 감당 못할 위험 앞에서 안전을 위해 몸을 사리는 건 인간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다소곳하게 레이저 절단기의 전원을 내리고 동굴 속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두 손으로 흙을 퍼서 내 고철에서 빛이 반사될 만한 부분을 가렸다. 
  배터리 절전모드. 
  난 버려진 고철답게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저 미약하게 흐르는 전류를 따라 티라노사우루스가 어서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떠나주길 바라는 기도를 올렸다. 그대로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이렇게 매번 위험 앞에서 숨죽이고 버티는 것만이 해답일까? 
  바로 이전에도 늪에서 숨을 죽인 채 종일 엎어져 있지 않았던가? 
  이런 상태로 과연 라노 에스타카도까지 찾아갈 수나 있을까? 
  그럼, 적극적인 대처에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런 방법을 찾았을 때, 실패하게 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며, 대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인간들이 오감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두려움과는 다르다. 막연한 두려움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고, 인지된 공포 앞에서 사고 기능 자체가 얼어붙게 되는 인간들의 메커니즘과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위험 수치가 일정 이상 명백하다면, 로봇은 그 앞에서 그대로 활동을 멈추고 다른 명령을 기다리게 된다. 바로 그게 로봇의 한계다. 어떤 시도나 저항 없이 그저 다음 명령만을 기다린다.
  명령을 내려줄 인간을 잃어버린 로봇, 디지털 활용 도구를 잃은 로봇이란 건 결국 이런 거다. 늙은 인간의 속옷처럼 모든 회로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닳을 대로 닳아서 허점투성이고, 잘 이어지지도 않는다. 온갖 의문이 CPU에 가득 차올랐지만, 함부로 선택하거나 판단하지를 못한다. 
 
  그저 붉은 알림창에 오류 메시지만 복잡하게 연이어 떠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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