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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서가에 잠들다
1.
사랑
은 ‘동사(動詞)’이다.
드러내지 않으면
그 진위를 알 수 없으며
그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 힘든 관계로
국어의 9품사 중 동사에 속한다
그 기본형은 ‘사르다’로
감정이입의 대상을 위해
당사자 본인은 한 점 아낌없이
불타올라 재로 남음을 뜻한다
헌데,
여기,
번번이 거절당한 ‘사랑’이 하나 있다
거절당하였으나,
분명
‘사랑’이었으므로
아낌없이 전심전력을 다해 온 몸을 내던졌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며
그 행위가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도
역시
어엿한 하나의 진실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대외적으로 인정받아야 함이 마땅하며,
그간 보여준 희생에 준할 만큼의 대가 역시
지불되어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이 사실을 무시한 채
번번이 이 ‘사랑’을 거절하기 바빴던 많은 이들에게도
철퇴를 가하여야 할 것이다.
2.
남자의 글을 읽은 여자는 메모를 남겼다.
3.
당신,
그 동안 훌륭히 한 권의 책이 되셨군요
그래서
참
안타깝네요.
차라리
한 편의 만화나 영화가 되지 그러셨어요
딱딱한 표지
깨알 같은 글씨
어마어마한 두께
게다가
첫 음절부터 마지막 구두점까지
오로지 당신만의 언어로군요.
정말,
누가 당신을 읽으려할까요?
당신,
미안하지만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는 당신,
이제 그만 우리들이 쓰는 말을 배워보시지 않겠어요?
우리에게
‘사랑’은
명사(名詞)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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